소풍, 그리고 혼자 남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

어린 시절 김밥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사람이었다

‘내일은 소풍 가는 날이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하루 종일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소풍은 단순히 학교 밖으로 나가는 날이 아니었다.

그날은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하는 작은 축제였다.


소풍 전날은 우리 집도 잔칫날이었다

엄마는 장을 보러 가셨고,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마트를 따라다녔다.

김밥 재료를 고르고, 평소에는 잘 사주지 않던 과자와 사탕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작은 간식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집으로 돌아오면 부엌은 더 바빠졌다.

시금치를 데치고, 계란을 부치고, 단무지와 햄을 준비하는 엄마의 손은 분주했다.

나는 괜히 부엌을 기웃거리며 김밥 하나를 먼저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곤 했다.

소풍 전날 밤은 잠도 쉽게 오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하늘을 확인했다.

‘내일 비 오면 안 되는데…’

달 주변에 둥근 달무리가 생기면 어른들은 비가 올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도 괜히 걱정이 되었다.

‘제발 내일만은 맑았으면 좋겠다.’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소풍날 아침의 설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예쁜 옷을 입고, 엄마가 정성껏 싼 김밥을 가방에 넣었다.

음료수 하나.

사탕 몇 개.

과자 한 봉지.

물통까지 어깨에 메고 학교로 향하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학교 운동장은 평소보다 훨씬 시끄러웠고,

친구들은 서로의 간식을 보여 주며 웃고 있었다.

그날만큼은 공부도 없고 시험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어느 해 소풍을 가지 않았다

얼마 전 직장 동료들과 어린 시절 소풍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모두가 김밥 이야기, 보물찾기 이야기, 장기자랑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소풍을 가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은 의아해하셨다.

“안 가면 학교에서 자율학습해야 하는데 괜찮겠니?”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날 나는 친구들과 소풍을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자율학습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선택이었다.


사실 내가 싫었던 것은 소풍이 아니었다

중학교가 되면서 소풍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친구들은 둘씩 짝을 지어 앉았다.

평소 친했던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친구가 셋이면 한 명은 남는다.

다섯 명이어도 한 명은 애매해진다.

그 한 사람은 다른 친구와 어색하게 앉아야 할 수도 있다.

그 모습이 나는 늘 마음에 걸렸다.

그 남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어린 나는 그 어색한 순간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 혼자 남는 장면을 보는 것도 싫었고,

혹시 내가 그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아예 가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특별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람보다 분위기를 먼저 느끼는 아이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표정이 잠깐 굳는 것.

웃고 있지만 어색한 미소.

혼자 서 있는 친구.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사람.

나는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도 눈에 잘 들어왔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도 사람을 만나면 상대의 표정과 말투를 먼저 읽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남는 사람’이 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다.

모임에서.

직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 안에서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혼자 남는 순간.

그 순간은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가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말 한마디를 더 건네고,

자리를 조금 옮겨 함께 앉고,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워 주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바꾸는 따뜻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풍이 내게 남긴 것

시간이 흐른 지금,

김밥의 맛은 희미해졌다.

어떤 과자를 가져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기억난다.

함께 웃었던 친구들.

그리고 혹시 혼자 남았을지 모르는 누군가를 걱정했던 어린 나.

소풍은 하루였지만,

그날의 마음은 평생을 따라왔다.

어쩌면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작은 소풍을 떠난다면

이제는 학교 소풍을 갈 나이는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모임에 나가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겠다.

혹시 오늘, 혼자 남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장면이 싫어서 소풍을 포기했다.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을 알기에, 누군가가 혼자 남지 않도록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남겨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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