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시키는 일을 잘 따라주었으면 했다.
하기 싫은 일도 있었을 텐데 별다른 불평 없이 따라와 준 아이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맙다.
그때의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좋은 교육의 기회도 가능한 한 많이 주고 싶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길을 보여주고 그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하면 내가 부모로서 잘한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어떤 학교에 가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했고,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었는지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부모가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아이에게도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부터는 조금씩 물러서려고 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도록,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기다려주도록,
실수를 하더라도 스스로 경험하며 배우도록 말이다.
말을 하고 싶은 순간에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도와주고 싶은 순간에도 때로는 기다렸다.
이제 어른이니까.
그런데 요즘은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를 어른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어디까지 기다리는 것일까.
각자의 삶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너무 무관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관계까지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가족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부모와 어린 자녀의 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가족도 하나의 공동체다.
공동체에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
서로에 대한 애착도 필요하고, 관심도 필요하고, 때로는 책임감도 필요하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한 번 더 물어봐 주는 것,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다면 먼저 안부를 묻는 것,
가족에게 중요한 일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함께하는 것,
내가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어주는 것 아닐까.
부모가 자녀에게 모든 것을 해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니까”라는 말만으로 가족 안에서의 모든 책임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립과 무관심은 다르다.
건강한 거리를 두는 것과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도 다르다.
사랑한다면 때로는 기다려주어야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먼저 다가가야 할 때도 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그것을 배우고 싶고, 아이들과 함께 그런 가족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은 아이들의 삶을 결정해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도 가족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도 자녀도 서로를 소유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서로에게 무관심하지 않은 관계.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필요할 때 돌아볼 수 있고,
기쁜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나누고 싶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관계.
아마 내가 지금 바라는 가족은 그런 모습인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많이 생각했다면,
아이들이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기다려주되 무관심하지 않고,
존중하되 멀어지지 않고,
독립하되 서로에게 책임을 느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하는
가족이라는 새로운 관계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