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방은 언제나 무겁다.
출근할 때도 그렇고, 어디 잠깐 나갈 때도 그렇다.
읽고 있는 책 한 권, 영어 공부를 위한 책과 노트, 일기장을 넣는다.
때로는 지금 당장 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책까지 챙긴다.
사실 집을 나갔다 돌아오는 동안 그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책 한 권만 읽고 돌아온다.
어떤 날은 영어 공부만 조금 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가지고 돌아온다.
그런데도 다음 날이면 나는 또 비슷한 것들을 가방에 넣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나는 집을 나서는 순간에는 그날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은 책이 읽고 싶을 수도 있다.
갑자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무언가 적고 싶어 일기장을 펼칠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해 간다.
책도 넣고, 노트도 넣고, 일기장도 넣는다.
결국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들이 가방 안에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책만이 아니다
집에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책들이 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때 사용하던 교과서도 아직 가지고 있다.
수학책도 있고, 내가 언젠가 공부해보고 싶었던 책도 있다.
한자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런저런 공부에 대한 책들도 남아 있다.
나는 이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배우며 자랐는지, 언젠가는 그 교과서를 한번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꼭 시험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을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우습다.
더 많은 책을 가지고 있고 싶은데 이제는 꽂아둘 공간조차 별로 없다.
읽어야 할 책은 쌓여가고, 하고 싶은 공부도 여전히 많다.
그럼에도 나는 또 책을 가까이 둔다.
문득 오빠가 생각났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오빠 생각이 났다.
예전에 오빠도 항상 무거운 책을 한가득 들고 다녔다.
당시에는 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 무거운 책을 왜 다 가지고 다닐까?’
정작 집에 돌아와 펼쳐보는 책은 한 권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내가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나도 가방 가득 책을 넣어 다닌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시 그대로 집으로 가지고 온다.
그 모습을 떠올리다 웃음이 났다.
그때의 오빠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꼭 그 책을 모두 읽겠다는 생각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했던 것은 아닐까.
‘혹시 읽고 싶어지면 읽을 수 있어.’
‘혹시 공부하고 싶어지면 할 수 있어.’
그 작은 가능성을 등에 지고 다녔던 것은 아닐까.
나는 가능성을 가지고 다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책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가방 속에는 내가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들어 있다.
더 읽고 싶은 마음,
더 배우고 싶은 마음,
영어를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공부를 언젠가는 해보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나는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가능성을 들고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책을 펼치지 않아도 괜찮다.
가방 속에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마 그것이 나에게는 작은 안정감인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내 가방을 들어보고
“도대체 뭘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녀?”
라고 물으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다니는 거라고.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가벼운 가방을 들고 다니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 안에는 버리지 못한 물건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포기하지 않은 나의 호기심과 배움과 가능성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 가방은 조금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