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사라지는 시대, 오히려 열정을 간직한 사람을 만났다

어제 예배를 마친 뒤 한 성도님을 집까지 모셔다 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음향과 오디오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집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한쪽 방이 마치 작은 오디오 전시장처럼 꾸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피커, 앰프, 케이블, 턴테이블….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관리된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모습만으로도 그분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분야를 사랑해 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장비가 아니라 그분의 표정이었습니다.
직접 음악을 틀어 주시며 “이 부분을 한번 들어보세요.”, “이 스피커는 이런 소리가 납니다.”라고 설명하시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자랑하는 것처럼 행복해 보였습니다.
70대가 넘은 나이였지만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젊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늙는 것이 아니라, 설렘을 잃을 때 늙는 것이 아닐까.
하루에 딱 한 시간만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좋아하시니까 하루 종일 하시겠네요?”
그런데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니요. 하루에 한 시간만 합니다.”
순간 의아했습니다.
왜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분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하면 질릴 수 있잖아요. 내일도 하고 싶으니까 딱 한 시간만 합니다.”
그 한마디가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만 있으면 더 하고, 더 배우고, 더 즐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오히려 좋아하기 때문에 절제하고 계셨습니다.
내일도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말 속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얻은 지혜가 담겨 있었습니다.
오래 사랑하는 비결은 절제였다
우리는 흔히 열정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을 새로운 자극에서 찾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고, 새로운 장비를 사고, 새로운 목표를 세웁니다.
하지만 어쩌면 오래 지속하는 힘은 ‘더 많이’가 아니라 ‘적당히’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며칠 뒤 몸이 지쳐 포기하게 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종일 몰아서 하면 다음 날 책을 펼치기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너무 가까워지려는 욕심은 오히려 관계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래가기 위해서는 쉼이 필요하고, 여백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이미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스스로 한계를 정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집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사실 이번 방문에서 또 하나 크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어떤 물건을 오래 간직하는지,
무엇을 가장 아끼는지,
어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방문 역시 그랬습니다.
오디오 장비 하나하나에는 단순한 기계 이상의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분의 취미였고,
그분의 기쁨이었고,
그분의 청춘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비보다도 그 장비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예전에는 집을 찾아가며 사람을 만났습니다
문득 예전 교회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는 구역예배나 속회 모임을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각 가정을 돌아가며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집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 갔습니다.
그때는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신앙과 삶을 나누는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교회나 카페에서 만나게 되고, 서로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물론 시대가 변했고 생활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대신 약속만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대신 일정만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살아온 시간을 만나는 일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닮아 간다
그분의 집을 나오면서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무엇을 이렇게 오래 사랑하고 있을까?’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리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내일도 다시 하고 싶도록 조금 남겨 두는 지혜.
그것이 오래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운동도,
독서도,
신앙생활도,
가족과의 시간도,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기보다 꾸준히 이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제 만난 한 시간의 철학
어제 저는 단순히 한 분을 집에 모셔다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잠시 들여다보는 귀한 시간을 선물받았습니다.
70대가 되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절제하며 오래 즐길 줄 알고,
그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모습은 제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끝까지 몰아가기보다 내일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남도록 절제하는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짧은 달리기가 아니라 긴 여정입니다.
오래 행복한 사람이 되는 비결은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사랑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지켜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의 짧은 방문은 제게 그것을 조용히 가르쳐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