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계속 숨기고 억누르기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정신적인 건강뿐 아니라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자아개방(Self-disclosure)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의 생각, 감정,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순히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나를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을 조금 열고, 상대방에게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마치 유리창을 통해 안쪽이 조금씩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살다 보면 참 친절한 사람이 있다.
누구에게나 미소를 짓고, 말투도 부드럽고, 사람들과 크게 부딪히지도 않는다. 늘 좋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함께 지내기에 편안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을 오래 만나도 그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기분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기분이 나쁠 때는 알 수가 없다. 화가 났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웃고 있고, 불편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때로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돌아서는 순간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저 사람은 지금 정말 괜찮은 걸까?’
‘아니면 괜찮은 척하고 있는 걸까?’
물론 자신의 감정을 모두 밖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감정을 조절해야 할 때도 있고, 순간적인 화를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태도일 때도 많다.
하지만 언제나 감정을 숨기고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나는 사람이 기쁠 때는 기뻐할 줄 알고, 화날 때는 화가 났다는 것도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가 났다고 소리를 지르라는 뜻은 아니다.
“그 말은 조금 서운했어.”
“지금은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아.”
“그 일이 정말 기뻤어.”
“오늘은 내가 조금 힘든 날이야.”
이 정도의 표현만으로도 상대방은 그 사람을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오히려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웃으면 정말 기쁜 것 같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그것 역시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계속 추측하지 않아도 된다.
자아개방은 나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아개방이 누구에게나 내 모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지켜야 할 사적인 영역이 있다.
내 상처와 과거, 가족 이야기, 경제적인 문제, 깊은 고민까지 모든 사람에게 공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말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하게 관계를 맺느냐일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아.”
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면서 마음속에서는 전혀 괜찮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보다,
“오늘은 조금 힘들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그것이 건강한 자아개방의 시작이 아닐까.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며 가까워진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결국 서로를 조금씩 보여주는 과정인 것 같다.
처음에는 날씨 이야기를 한다.
그다음에는 취미 이야기를 하고, 가족 이야기를 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걱정이나 두려움도 말하게 된다.
“사실 나는 이런 게 힘들어.”
한 사람이 이렇게 마음을 조금 열면 상대방도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꺼내놓는다.
“나도 그런 적이 있어.”
그 순간 관계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다.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의 부족함과 감정을 조금 보여주는 사람이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인지 모른다.
나를 유리알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나를 유리알처럼 보여주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투명해서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유리가 아니라, 적어도 가까운 사람이 나를 바라볼 때 내 안의 모습이 어느 정도는 보이는 사람.
기쁠 때 기뻐하고,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며, 감사할 때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사람.
그리고 내가 잘못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상대방도 긴장을 조금 내려놓게 된다.
‘이 사람 앞에서는 나도 조금 솔직해도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생긴다.
나를 숨기지 않고 살아가는 연습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느끼게 된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완벽하게 친절하고, 언제나 웃고, 항상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때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보여주는 것이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나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사람, 신뢰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나는 이런 것이 좋아.”
“이런 일은 조금 속상해.”
“오늘은 당신과 이야기해서 정말 좋았어.”
그렇게 나를 조금씩 보여주는 것.
어쩌면 건강한 관계란 서로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숨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일지도 모른다.